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레이엄 수네스 (문단 편집) === [[레인저스 FC]] === [[파일:external/news.bbcimg.co.uk/_47726468_souness-smith-87_766.jpg|width=400]] 수네스는 1986년 4월 레인저스에서 플레잉 코치로서 그의 감독 인생을 시작했다. 그는 당시 레인저스의 감독이었던 [[조크 월러스]]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월러스는 수네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아 팀의 최대의 라이벌 [[셀틱 FC]]을 무찌르고 리그를 지배하는 데 일조했다. 수네스는 주로 코치로 활동했지만 가끔씩 선수로 나왔고 그때마다 클래스를 보이며 팀내 어린 선수들의 귀감이 되었다. 수네스는 이 무렵 재능이 뛰어난 어린 선수들을 많이 발굴했다. 그는 입스위치의 주장이었던 [[테리 버처]], 노리치 시티의 골키퍼 찰리 우드를 영입했고 트레버 스티븐, 게러 스티븐스, 트레버 프랜시스, 그리고 [[레이 윌킨스]]를 발굴했다. 레인저스는 그의 활약으로 스코틀랜드를 넘어 영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단이 되었다. 당시 영국은 헤이젤 참사로 인해 국제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스코틀랜드는 예외적으로 참가가 가능했고 스코틀랜드 리그를 지배하고 있던 레인저스는 이 때문에 영국 최고의 클럽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. 수네스는 이러한 팀의 명성을 발판으로 자신의 감독 커리어를 순조롭게 시작했다. 그는 1986-87 시즌에 셀틱을 2:1로 격파하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1988-89 시즌과 1989-90 시즌에는 "도메스틱 더블"을 달성하였다. 게다가 단지 성적만 좋았을 뿐 아니라 레인저스 역사상 거의 최초로 흑인 선수를 영입하고 셀틱 출신의 가톨릭 신자 선수인 모 존스턴을 영입하여[* 두 경우 '거의 최초'라고 하는 이유는 흑인 선수의 경우 20세기 초반에 월터 툴이라는 선수가 레인저스와 계약했었으나 경기에 출장하기 전에 [[1차 세계대전]]에 나가 전사했기 때문이고, [[가톨릭]] 선수들의 경우에는 모 존스턴과 달리 가톨릭 신자임을 명확하게 드러내지는 않고 레인저스에서 뛴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.][* 모 존스턴의 경우 당연히 파장이 엄청 났는데, 셀틱에서 바로 레인저스로 이적한 건 아니지만(셀틱에서 낭트를 거쳐서 왔다.) 셀틱 팬들이야 당연히 [[이스카리옷 유다|유다]]에 비유하며 비난했고 레인저스 팬들도 어떻게 가톨릭 선수를 영입하냐고 비난했지만, 모 존스턴이 [[올드펌]] 더비에서 인저리 타임에 결승골을 넣는 활약을 보여 이후 많은 레인저스 팬들이 그를 응원했다.][* 레인저스 감독을 하긴 했지만 수네스는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종교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다. 심지어 첫번째 부인은 가톨릭 신자였고, 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.] 레인저스의 차별적인 종파 분위기를 철폐하는 모습으로 개념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. 레인저스의 일부 팬들이 이스라엘 원정에서 나치 경례를 하는 등 21세기에도 파시스트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생각하면 1980년대에는 정말 편견을 벗어던지고 파격적인 모습을 보인 셈이다. 이때만 해도 그는 잘 나가는 젊은 감독이었고 그의 대활약을 주목한 리버풀은 마침 케니 달글리시가 감독 직을 사임하자 그를 선임하기로 결정한다. 그러나 이 결정이 양자 모두에게 해악을 끼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